‘할배’도 ‘누나’도 낯선 곳에선 안 하던 행동… 그래서 ‘여행’
 | |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 등 여행 예능 프로그램 연출에 일가견이 있는 나영석 PD는 “출연자 캐릭터를 끄집어내기 위해 붙잡고 인터뷰하는 방식까지 써봤다”고 말했다. 김정근 기자 |
ㆍ예능판 선두주자 ‘꽃보다’ 시리즈 나영석 PD 인터뷰ㆍ‘1박2일’ 때 이틀 촬영에 갈증, 열흘 정도 피사체를 깊이 들여다보는 작품 찍자 생각대중문화의 유행을 이끄는 최전선에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예능의 변화 속도는 빠르다. 짝짓기 프로그램에 이어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유행하더니 최근에는 출연자의 일상을 연출자 개입 없이 바라보는 ‘관찰형’ 예능프로그램이 대세다. CJ E&M의 나영석 PD(38)는 ‘예능판’의 선두 주자다. 그는 여행이란 소재를 처음으로 예능으로 끌어들인 리얼 버라이어티 KBS <1박2일>을 만들었다. 지난해 여름에는 유재석, 강호동 등 예능스타 대신 이순재(79), 신구(78), 박근형(74), 백일섭(70) 등 70대 노배우들을 출연시킨 tvN <꽃보다 할배>로 예능판을 흔들었다. 이어 윤여정(67), 김자옥(63), 김희애(47), 이미연(43)의 <꽃보다 누나> 시리즈까지 궤도에 올려놓았다. 시청률 2%만 넘으면 성공이라는 케이블 TV에서 <꽃보다 할배>는 시청률 7%, <꽃보다 누나>는 시청률 10%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27일과 31일 만난 그는 “억지스러운 상황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연출관을 이야기했다. ■ 연출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깔깔 웃게- 케이블채널 예능 시청률 역사를 매번 새로 쓰고 있다. <꽃보다> 시리즈의 매력은 뭔가.“스스로도 신선했다는 생각이 든다. <꽃보다 할배>는 나도 할아버지들이 예능에 나와서 이렇게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갈 줄은 몰랐다. 기대를 안 한 건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그리 좋게 봐줄지는 몰랐다. <꽃보다 누나>에서도 출연자 모두 열심히 했지만 바로 전에 편성된 <응답하라 1994>가 워낙 인기가 높아 다음 시간대인 우리가 도움을 받았다. 절반은 얻어먹고 간 것 아닌가. (웃음)”- 방송을 본 ‘누나들’의 반응은 어땠나.“이승기씨는 자기가 바보 같았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방송을 보고 더욱 바보같이 나온 자신의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웃음) ‘누나들’에 대해 말하자면…. 무덤덤한 할아버지들과는 달랐다. 일과 여행의 중간, 애매한 촬영이지 않았나. 예전의 추억을 되새기듯 ‘아, 여기도 갔었지. 저기도 갔었지’하는 감탄사가 많았다.”- ‘예능꾼’이라 불리는 방송인들을 쓰지 않고 있다.“촬영 전에는 솔직히 잘 모른다. 예상만 하는 거지. 다만 <꽃보다 누나>의 경우에는 여배우니까 할아버지와 다를 거라고 봤다. 할아버지들과 이서진씨의 관계가 주인과 종의 관계라면 (웃음) 이승기씨와 누나들의 관계는 남자와 여자, 경험이 많은 자와 미숙한 자의 ‘그림’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승기씨가 어린 나이에 데뷔해 경험치가 떨어져 여행에서 헤맬 것이란 사실은 알았다. 게다가 의욕은 있지만 노련하지 못하다는 점이 오히려 누나들이 이승기씨를 돕는 상황이 있을 거라고 봤다. 누나들의 캐릭터가 이승기씨를 도와주며 드러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 | tvN <꽃보다 누나> |
■ 캐릭터 만들기, 제작진은 답 보고 문제 푸는 격- 앞만 보고 가서 ‘직진 순재’(이순재), 과거 호칭에서 따온 ‘구야형’(신구), ‘호기심 잡식 소녀’(김희애) 등 캐릭터를 창조해가는 모습이 놀랍다. “10일 동안 여행을 다녀온 후 1회부터 편집을 하니까 제작진 입장에서는 답을 다 보고 다시 문제를 푸는 것과 마찬가지다. 캐릭터가 좀 덜 드러나는 출연자도 미세하게 보면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그런 경우에는 붙잡고 인터뷰를 하는 방식도 썼다.”- 예능은 유행이 빨리 변한다. “예능은 다 흐름이 있다. 지난해는 연출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고 본다. <1박2일>을 마칠 즈음 ‘1주일에 이틀 만 촬영해서 출연자들의 깊은 모습을 보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KBS2 <인간의 조건>도 5~7일을 관찰했다. <꽃보다>는 10일을 촬영했다.”- 교양과 예능의 벽을 허무는 프로그램이 2014년 새해에도 유행할까.“한창 리얼 버라이어티를 강조하던 <1박2일> 당시 다음에 예능을 다시 하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피사체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하루, 이틀 촬영해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다. 나 스스로가 그런 형식을 좋아한다. 재밌는 건 그것도 최종 형태는 아니라는 거다. 요즘 작가와 하는 이야기가 ‘다음에는 감동 이런 것 생각하지 말고 대놓고 깔깔거리며 웃긴 거 해보자’고 말한다. 유행을 고려하기보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걸 해야 한다. 우리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시청자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아닌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유행을 이끌고 있다. 어떻게 아이디어를 프로그램에 적용시키나.“나는 철학자나 과학자는 아니다. (웃음)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많은 PD와 작가들이 돕는다. 뭐, 영화를 꼬박꼬박 보고,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다. 다른 프로그램을 보다가 영감을 얻기도 하고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 그러다가 아이디어가 소진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방법이 없고, 서로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예능 PD에게 휴식과 재충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재충전을 위해 사이사이 휴식이 있는 시즌제를 택했는데 오히려 욕심이 나니까 매주 촬영·편집을 할 때보다 더 힘들다. (웃음) 내년에는 시즌과 시즌 사이에 휴지기를 더 길게 가지고 싶다.”- <1박2일>도 여행, <꽃보다> 시리즈도 여행이다. 왜, 여행인가.“예능을 시청자들이 왜 볼까 생각해보면 지루한 일상에서 대리만족을 하려고 보는 이유가 큰 것 같다. 예능 PD들은 직업적으로 시청자들의 이런 욕구를 충족해 줘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다. 당장은 직장인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지만 TV를 보면서 ‘나도 저기 가고 싶다’는 그런 ‘한 순간의 편안함’이라도 주고 싶다. 게다가 출연자를 외국이든 국내든 여행지를 찾아 일상과 유리된 공간에 데려다 놓으면 안 하던 짓을 하기 마련이다. (웃음) 이승기씨도 한국에서는 똑똑한 학생이다. 하지만 여행을 가니 실수를 연발하지 않나.”- <꽃보다> 시리즈 예고편을 보면 과장하는 편집을 종종 볼 수 있다. | | tvN <꽃보다 할배> |
“이건 100%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포석이다. (웃음) 케이블채널 연출자는 시청률을 외면할 수 없다. 첫째는 갈등이나 재미를 크게 살려서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급한 상황이 돼야 그 사람의 성격이나 캐릭터가 드러난다. 그냥 편안한 여행을 다녀오면 예능적인 재미를 만들 수 없다. 그렇다고 억지로 게임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여행기한이나 용돈에 한도를 두는 등의 설정을 한다. 정해진 틀에서 여행을 해야 하니 각자 성격과 재미가 나온다.”■ 반은 일, 반은 재미… 매번 힘들지만 방송 보면 즐거워- 12년 동안 예능 PD로서 살았다. TV 밖의 삶은 어떤가.“물론 아쉬운 것도 있다. 놀고 싶기도 하고, <1박2일> 마치기 전까지는 개인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은 재밌다. 고통스럽고 힘들기도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직업이 꽤 마음에 든다. 반 정도는 일로, 반 정도는 재미로 생각하고 있다. 매번 촬영, 편집을 하며 힘들면 후회를 하다가도 방송을 보면 즐거워한다. 아마 좋은 면만 기억하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에서 느껴지는 보람, 재미, 위안으로 친구나 가족을 잘 못 보는 허망함을 달래는 거다.(웃음)”■ 올해 계획은 ‘좀 더 가볍게, 대놓고 웃기는 작업’- KBS 입사 동기였던 신원호 PD가 <응답하라 1994>로 대박을 터뜨렸다. 예능 출신으로 드라마도 성공시켰다.“당연히 부럽다. 신 PD는 예능도 하고 드라마도 하는데 ‘나는 뭔가’ 싶기도 하다. 드라마 PD라니…. 멋있을 것 같다. 연출자로서는 충분히 자극된다. 나도 다른 부분에 관심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다큐멘터리도 찍고 싶고, 드라마를 하고 싶다. 늘 관심이 있지만, 하다 보니 예능을 계속 하고 있다.”- 나 PD가 2014년에 뭘 할지 방송가의 관심이 많다.“‘꽃할배’들과 떠나는 또 한 번의 여행이 상반기에 계획돼 있다. 할아버지들을 뵈면 보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느낌이다. 또 지금까지의 프로그램과 정반대로 깔깔거리고 웃을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뭐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꽃보다> 시리즈가 점잖고 안정된 느낌이라면 다음 프로젝트는 좀 더 가볍게, 그리고 웃음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말고 적당히 기대해주면 좋겠다. (웃음)”<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모바일 경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