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뜨거운 ‘국제시장’… 미화와 감동 사이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이 개봉 2주 만에 약 45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무서운 속도로 흥행하고 있다. 불어나는 관객 수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은 영화의 정치적 의미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들이다.

<국제시장>의 배경은 1950~1980년대다. 주인공인 덕수(황정민)가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내는 시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다. 덕수가 겪는 사건들인 한국전쟁, 독일 광부 파견, 베트남전쟁 등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이다. 이 시기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역사적 평가가 진행 중이다.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고 바라보는지에 따라 영화는 ‘과거 미화’와 ‘사실에 기반을 둔 감동’ 사이에서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다. <국제시장>에서 어떤 부분들이 논란을 불러올 만한지, 왜 논란은 갈수록 거세지는 것인지 영화 안팎에서 그 원인을 찾아봤다.




■ 역사적 사실의 일방적 선택, 미화로

윤제균 감독은 “영화를 통해 우리 시대 아버지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려 했고 영화의 분량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최대한 정치적인 시각은 담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윤 감독의 말처럼 조금이라도 논쟁이 있을 만한 사안들은 의도적으로 뺐다. 북한, 박정희 등이 그것이다. 한국전쟁 장면에도 북한군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또한 덕수가 겪는 역경들은 대부분 당시 국가의 상황과 정책들에 의해 발생하는 것들이지만 영화에서 ‘국가’의 모습은 완벽히 배제된다.

하지만 윤 감독이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들이 오히려 역사적 사실을 편협하게 전달해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표적인 것이 베트남전쟁에서 베트남 공산군이 가해자로 묘사된 부분이다. 영화에서는 한국군과 대화한 베트남 마을 사람들을 베트남 공산군이 몰살하려 하고 한국군이 이들을 구출해서 탈출시키는 영웅과 같이 그려진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이 영화는 정치적인 부분을 탈색하기 위해 우리 민족을 전부 다 약자이자 피해자로 포지셔닝하고 있다”며 “베트남전쟁조차 우리가 약자와 연대를 한 것처럼 그려냈다”고 말했다.

■ 아버지 세대에 대한 감사, 세대 간 갈등으로 이어질 수도

<국제시장>은 지금 노년들의 ‘희생’을 여러 번 강조한다. 덕수는 동생과 자식들을 위해 항해사가 되겠다는 꿈도 포기하고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평생을 바쳐 돈을 번다. 자식들은 덕수의 고생을 몰라준다. 덕수 부부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자녀 부부들만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 영화 말미에서 아버지의 옷을 붙잡고 “아버지 저 이만하면 잘 살았지요”라며 통곡하는 덕수와 대비되는 장면으로 거실에서 화목하게 웃고 있는 자식들과 손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이렇게 고생해서 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즐거운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특히 불편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젊은 세대들은 양극화와 불안정한 고용 때문에 나름의 문제를 겪으며 ‘미생의 삶’을 살고 있는데 영화는 덕수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아버지 시대의 희생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불편한 시각

윤 감독은 “정치적인 것을 완전히 뺀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다. 애초에 정치적으로 어떤 시기를 미화할 의도가 없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영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은 영화를 진영논리로 끌어들였다. 최근 칼럼니스트 허지웅과 관련한 논란이 대표적이다. 허지웅은 한겨레신문과 한 대담(25일자)에서 <국제시장>을 언급하면서 “후손이 아니라 우리가 고생해서 다행이라는 식의 사회 분위기에 토가 나온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이 발언에 대해 이틀 후 종편 TV조선은 “좌파 논객이 <국제시장> 토 나온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온라인상에서 ‘전라도 출신이라 그렇다’는 등 비하 발언이 이어졌다. 허지웅은 30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국제시장>에 대해 TV조선과 일베가 반응하는 방식이 <인터뷰>를 대하는 북한의 모습 같다”고 말했다.

한술 더 떠 정치권은 <국제시장>을 아전인수격으로 들먹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9일 회의 자리에서 <국제시장>의 한 장면을 언급하면서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 경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가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문재인 의원이 <국제시장>이 아닌 다른 영화를 관람한 것을 두고 박정희 시대를 미화하는 영화라 보지 않았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정치의 양극화가 돼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박근혜 정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현대사와 관련된 사안들의 한 중심축이다 보니 이런 논쟁들이 더 가열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