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이란 건 고대부터 있던 지위죠.

영국 챨스 황태자가 옛날에 이런 농담을 했다던데, 자기 직업인 왕족은 세계에서 2번째로 오래된 직업이라고,

물론 첫번째로 오래된 직업은 매춘이라는 기존 농담 하에서.  ㅎㅎㅎ

고대 왕족은 남들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뛰어나단 걸 강조해야 했습니다.

우리 신라 어느 왕이 머시기가 엄청나게 커서 여느 여자랑은 밤생활이 안 되었고, 그 왕비는 또 거시기가 엄청나게 커서

한번 앉아 누시면 큰 북만한 똥이 나와서 개 여러 마리가 한 덩어리를 놓고 다퉜다는 거도 그런 차원이죠.  ㅎㅎㅎ

대체로 고대에는 앗시리아 사자사냥 같은 이런 강인한 이미지로 왕의 권위를 부각합니다.

그냥 창으로 찌르는 거도 아니고 일대일로 붙어서 저렇게 배나 머리를 칼로 푹 찔러서 숨을 끊어버리는 비상식적인 모습이

앗시리아나 그 근처 중동 고대작품 중엔 참 많습디다.   무섭죠? 

이런 살상도 그냥 재미가 아니라 신과 자연을 상대하는 왕이 문명을 위협하는 적을 처벌한다는 메시지랍디다.

그런데 이런 거 정도는 그냥 넘어가는데  대영박물관에서 (브리티쉬뮤지엄이든 영국박물관이든 맘대로들 부르시고),

정말 사람 위축시키는 걸 봤었죠. 

아메리카 부분 전시실에 크게 기대 안 하고 들어갔다가 본 돌에 만든 부조 그림.  8세기 제작

멕시코 치아파스 근처에 있던 고대 마야왕국 도시 Yaxchilán 에 있던 신전에서 뜯어냈다는 Yaxchilán lintel 24

(Yaxchilán 머릿돌24번).

왼쪽 남자는 왕인데 방패 표범2세 shield jaguar, 오른쪽은 그 왕비 레이디 쏙 Lady Xoc

지금 둘이 하는 짓이 마야 상류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이자 특권이던 피 뽑는 의식입니다. blood letting

왼쪽에 있는 왕이 직접 이 중요한 장면에서 횃불을 들고 밝히는 가운데,

왕비가 뾰족한 게 붙은 줄 같은 걸 직접 자기 혓바닥에 구멍을 뚫어 통과시키죠.

피가 줄줄 흐르면 밑의 바구니에 담아둔 종이 같은 거에 젖어들고요.

아무리 혀에 피어스도 할 수 있다지만, 돌쪼가리 붙은 기다란 줄로 하염없이 혓바닥 뚫는 게 중요한

행사에서 (세자 책봉이라든가, 신전 건축이라든가) 생략할 수 없는 주요 행사였답디다.

나중에 저 왕비 무덤자리를 발견했는데, 끄트머리에 구멍난 흑요석 쪼가리가 150개도 넘게 발견되었답니다.

줄은 썩어 없어졌고, 줄에 꿰었던 돌만 남은 거죠.

이걸 맨정신에 했는지 고통을 덜어줄 뭔가 먹고 했는지는 모릅니다만.

(오랜만에 다시 이 그림 보고 깨달은 거지만, 밑에 나오는 다른 왕비의 비슷한 장면에는 줄에 뾰족한 게 없죠.

다른 왕비는 그냥 맨줄만 가지고 뚫고 있습니다.

감히 다른 왕비는 엄두도 못낼 더 큰 고통을 감수하는 위대한 왕비라는 표현인지도 모르겠군요)

피 뽑는 의식을 이렇게 정교하고 화려하게 표현한 작품도 달리 없다는데, 모델인 레이디 쏙의 권위도

마야시대 여성 중 유례가 없었다고 추측합디다.

왕족으로서 제1왕비가 된 뒤에도 세자를 직접 자신이 선택하고 그 세자를 밀어줘서 즉위시키고,

저 건물에도 레이디 쏙이 굉장히 중요하게 묘사되는 거로 봐서 정치적 세력이 범상치 않았던 듯.

그럼 왕은 안 했냐?

다른 돌쪼가리에 그려진 그림.

여기 왼쪽은 지위가 아까 그 왕비보단 좀 낮은 다른 왕비가 비슷하게 줄로 혀 뚫기 하는 중이고,

오른쪽에 있는 게 아까 그 왕인데 기다란 막대기를 손에 들고 있는데,

이게 머냐면 돌로 깎은 송곳입니다.

이걸로 손수 남성 심볼을 찔러서 피를 내는 겁니다.

이렇게 찔러서 바구니 가득 피 묻은 종이를 담고 있노라면,  그 분을 뵐 수 있는 겁니다.

신성한 뱀 모습을 한 신, 이분을 만나서 조상, 나라, 자연재해에 대한 온갖 지혜를 얻고 백성을 다스린다 이런 겁니다.

옛날에도 천한 넘들은 기가 죽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 돌쪼가리들이 고대 마야 미술의 걸작이랍디다.

원래는 채색도 되었고, 주변의 꼬불꼬불한 그림이 그쪽 상형문자라서 설명도 읽을 수 있다더군요.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통치하던 국왕부부가 노년에 후계자가 없어서 좀 서열이 낮은 왕비한테서 얻은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서 저 건물을 지었다는데, 제1왕비가 그 왕자를 밀어주기 위해서 자신의 피 뽑는

모습을 저렇게 새기게 한 거 같다더군요. 

그래봐야 나중에 어렵사리 왕위 오른 그 왕자는 자기 생모의 권위 세워주기도 바빴다고 합디다만.

브리티쉬 뮤지엄은 워낙에 전 세계가 다 들어있는 곳이라 잠깐 들르는 관광객이 아메리카쪽까진 보긴 좀 어렵겠지만,

체력이 되면 저거도 한 번 보십쇼.

한국에서 유명세는 덜하지만 실물로 보면 거기서 유명한 앗시리아 부조실하곤 또 다르게 충격입니다.

크기는 감상에 적당하고 이동에도 적당한 가로 세로 1미터 좀 안 되는 정도라서,

사실 전에 대영박물관 순회전 왔을 때, 저거 하나 정도는 끼워서 와주지 않나 기대를 했는데 ㅎㅎㅎ

이번 루브르 박물관 회화전도 별시리 그렇더구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