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yter 작 <캐롤라인 왕비의 재판>

이 그림을 내셔널 포트리트 갤러리에서 처음 봤을 땐, 내용에 비해 제목이 희안해서 기억을 했다.

원래 그림은 상당히 커서 가로 세로 2미터씩이 넘는데, 이 미술관은 큰 이미지를 전혀 제공하지 않아서

이런 큰 그림 같은 경우는 진짜 맥이 빠지지만, 실제로 봐도 제목에 비해 차분하다 싶을 뿐이다.

1820년에 찰스 -다이애나 - 카밀라 소동 원판이 벌어졌었다.   얘네 동네는 한번씩 이런 거 터뜨리고 나서

좀 점잖게 살면서 다 잊어버렸다가 또 터뜨리니까.  ㅎㅎㅎ

찰스 -다이애나가 언론조작으로 저질 드라마 질질 찍어댔다면, 원판은 의회에서 왕비가 재판받고

대관식에 난입하고 등등 상당히 스케일이 웅장한 편이었다.  ㅎㅎㅎ

남편 불륜으로 반평생 웬수로 살아온  황태자 부부가 대관식 직전에 벌인 일대소동인 것이다.

남편은 조지 4세,

 그런데 누구 남편인고?   ㅎㅎㅎ

황태자비인지 왕비인지 하여튼 왕실에서 결혼한 아내 캐롤라인이 재판 받으면서 "황태자비로서 간통했느냐?"

라는 질문을 받고는 " 내가 간통한 유일한 남자는 영국 황태자 조지 4세다." 라고 맞받아쳤다. 

황태자가 일찌기 딴 여자랑 비밀결혼한 뒤에 자신과 결혼했으니, 프린세스 자신이 황태자와 잔 것은 결혼이 아니라

간통이라는 펀치였다.

코스웨이 작 미니어쳐 초상화.

20살 즈음부터, 요렇게 얼굴값 할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황태자는 어릴 때부터 연상 유부녀들을 좋아했단다.

지금까지도 그런 게 그 집안 내력같지만.

그러다가 딱 걸린 여자가 평민에다 6살 연상에다 2번이나 사별한 과부에다 결정적으로 가톨릭교도인 피츠허버트 부인이었다.

그렇다고 이쪽에만 대고 충실한 건 아니고, 왕자라는 지위에 맞게 정상적으로 이 여자 저 여자 계속 데리고 놀았지만,

이 가톨릭 여자하고는 인연이 줄창 계속되었고, 비밀리에 결혼까지 치렀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왕족의 결혼이 지 혼자 결정할 일도 아니고, 더군다나 가톨릭과 결혼은 바로 계승권 뺏기도록 아직까지 법에 딱 못 박혀있다.

또 비밀결혼은 가톨릭 교회에서도 인정 안 하긴 마찬가진데, 어쨌거나 서류상으론 둘이 결혼계약서에 사인을 했단다.

(카밀라는 전남편이 가톨릭에다 애들도 100% 가톨릭으로 키웠지만 본인은 아니라서 그나마 재혼이 가능했다)

아버지는 애들을 열명도 넘게, 건장한 아들만 7명이나  낳아놨는데, 다들 이런 식으로 공식결혼 안 하고 첩 두고 띵가띵가 살았다.

33살이 되니까 부왕 인내심이 폭발해서 중매결혼해야 빚을 갚아준다고 했고, 피츠허버트 부인 허락을 얻어서 강제로 결혼한 게

독일에서 온 6살 어린 사촌 캐롤라인 공주였다.

제법 이쁘게 생긴 공주도 20대 후반, 나이 들어 어거지로 만난 사람끼리 성격이 강해서 초반부터 웬수였는데,

언제 생겼는지 외동딸 샬럿 공주를 낳았다.

한동안은 애 데리고 이런 언론공작도 했으나,

왕자병 심각한 남편은 고분고분한 연상 피츠허버트 부인과 딴판인 연하 마누라가 싫어 결국 소박을 놨고,

기가 센 마누라는 계속 대들다가 별거하곤 남자들을 엄청 끌어들이면서 계속 세간에 스캔들거리를 제공했다.

거처에 드나들던 남자도 많았지만, 나중엔 거처에 데리고 살던 꼬마 남자애가 몰래 낳은 아들이란 소문까지

나서 특별수사팀까지 구성되었으나, 유전자 검사도 없던 시대니 두리뭉실 소문만 무성할 수 밖에 없을 지경.

당시에 그린 그림 토마스 로렌스 작.

이 의상은 당시 궁정유행과 전혀 딴판인 세간 유행이라고 한다.

궁정과 담 쌓고 엄청나게 놀아나던 황태자비 왼손은 그늘에 가려서 결혼반지가 잘 안 보인다.

결국 영국에서 입지가 열악해져서 유럽으로 갈 수 밖에 없었는데, 계속 엄청난 스캔들을 계속 제조했다.

무도회에서 웃통 벗고 춤추기, 중간도 아니고 너무 유명한 왕한테 공공연하게 첩질하거나 너무 신분이

낮은 하인과 공공연하게 놀아나거나.

이렇게 세월 보내는 동안 엄청 드세게 자란 황태자의 외동딸 샬럿은 작은 나라 왕자와 결혼한다.  이게 미래 빅토리아 여왕 외삼촌.

남편 보호 아래서 의외로 얌전하게 잘 사는가 싶더니 1년만에 사산하고 죽었다. 

영국왕실에 비상이 걸렸다.

노왕은 화목한 결혼에서 아들딸 열도 넘게 낳아놨는데, 왕자들은 부랑방탕해서 부담없는 첩질만 하고 후계자도 하나도

안 낳고 중년이고, (최소한 겉으로는 말썽없이 왕실 공인 결혼생활 유지하는 왕자가 딱 하나였는데 후사가 없었다 ㅎㅎㅎ)

공주들은  너무 아끼다 보니 세상에 안 내놔서 30살도 넘도록  시집을 못 가고.

결과는 자식은 열도 넘는데 적출 손자손녀 전멸.

아까 애 낳다 죽은 20살짜리 샬럿공주가 이 때까지 왕실의 유일무이한 적출손주였다.

왕자들한테 생활비 대주는 의회에서 돈을 무기로 결혼하라고 전방위공격을 가했는데,

죽은 공주 애비인 황태자야 본처가 유럽에서 사방에 첩질하고 본인도 비밀결혼한 본첩 비롯해 첩질 바쁘니 패스하고,

동생들도 어떤 녀석은 쉰도 넘은 나이에 초혼을 하는 판국이라.  2,3년안에 왕자들 모두 결혼은 했다.

(황태자가 33살에 늦게 결혼했지만, 동생이란 녀석들도 오십보 백보 마흔 넘어 초혼한 녀석이 둘, 쉰 넘어 초혼한 녀석이 둘,

한 녀석은 아예 왕실 허락 안 받는 지맘대로 결혼을 하고 살았다)

(빅토리아 여왕이 되는 공주가 이래서 탄생했는데, 사실 숙부들한테서 동갑내기 사촌남자애들도 태어났지만,

-하나는 몇 달 차이로 오빠, 하나는 며칠 차이로 동생 -

영국왕실 제도가 일본하고 틀려서 이 남자애들은 사촌누이의 신하가 되거나 독일로 갔다. 

일본왕실이나 우리 옛 왕실이라면, 형 왕자와 동생 왕자, 양쪽 아내가 새로 임신할 때마다 그 성별에 따라 계승권이

양쪽 집안을 오가는 역전극이 벌어지겠지만,

당시 영국 왕실은 형의 후손이 성별 구분 없이 우선권을 가지는 거라서

빅토리아의 어머니가 임신하던 순간, 태어날 애가 아들이든 딸이든 숙부의 아들들보다 우선권이 주어졌던 거다.  ok?

우리 상식에도 신기한 건 물론이고, 왕실 제외한 영국사회 제도와도 다르다.

어쨌든 빅토리아 여왕은 저 왕자형제 중 네번째 왕자가 쉰도 넘은 나이에 간신히 낳고 죽은 아이였으니

저 많은 왕자들이 정상적으로 살았다면, 역사에 빅토리아 여왕이라는 존재는 애초에 있을 수가 없었다  ㅎㅎ

오죽하면 이런 일화가 있다.   과부가 된 어머니와 살던 빅토리아가 어렸을 때, 가정교사와 족보를 그리다가

비로소 자신이 여왕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거다.   백부들 셋 모두 적출이 없어서 그런 구도였는데  ㅎㅎㅎ

아직 어리다고 누가 일부러 말해주지 않아서 둘이나 되는 동갑내기 사촌남자형제가 자신보다 계승순서가 뒤라는

걸 모르다가 비로소 깨닫고 "왕관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군요." 라고 말했다 한다. )

곧 노왕이 죽고, 황태자가 이어받는 순간, 대륙에서 캐롤라인이 달려왔다. 왕비가 될 권리를 주장하면서. 론스데일작 중년초상화.

옛날여자가 이래도 되는 거냐 싶지만, 당시 영국왕실은 세상에 본보기로 내세울 거리가 없는 주제라서, 캐롤라인은

대중에게 신나는 여흥거리를 제공한 거다.

그녀의 온갖 스캔들을 비꼬는 팜플렛도 나돌았지만, 오히려 이런 게 더 흥을 돋구워서 피플즈 퀸이라고 불리면서

왕실, 교회, 귀족의 권위에 캐롤라인이 정면 도전했다.

새로 등극할 조지4세는 황태자비 불륜으로 이혼하고 싶어했지만 법정 나가면 이쪽 불륜문제도 터질 수 밖에 없어서

고안한 게 법안통과였다.

의회에서 법으로 캐롤라인의 왕족권리를 박탈하고 결혼을 무효하자는 거였는데,

캐롤라인은 똑똑한 법률가 헨리 브로엄을 내세웠다.

불리한 증인을 너무 많이 만든 여자치곤 참 똑똑한 변호사 선택이었다.

변호사로 나선 브로엄이 똑똑했고, 여론이 캐롤라인의 편이라 귀족의회에서 통과된 법이 하원에서 걸렸다.

이혼은 되지 않았고, 대관식 날은 다가오고,

할 수 없이 영국 국내에서나 외국에서나 캐롤라인에게 왕비 대우를 못 하도록 조치하느라 영국 정부 직원들이 바쁘게 돌아갔다.

캐롤라인은 왕궁에다가 "대관식날 이 왕비가 무슨 옷 입고 참석해야 되겠냐?"

왕궁에선 "넌 참석 못할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대관식날 신이 난 군중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캐롤라인이 대관식장 웨스트민스터에 가서 닫힌 문을 두드리면서

"왕비시다. 문 열어라"

직원이 문을 빼꼼히 열고 내다보니까 안에선 상관이 "문 꽉 닫으라"고 호통치고.

초대된 귀족들만 참석할 수 있는 대관식은 당시 기준으론 더 엄청난 호화판으로 치러졌다고 한다.

결국 참석 못한 캐롤라인은 그래도 기 살아서 왕궁에 연락해서 "오늘은 왕비가 불참했으니 정식 대관식을 다음주

월요일에 제대로 거행해라."고 하는 재미있는 판이었는데,

캐롤라인이 1달도 못 되어 복통으로 죽었다. 

파견된 왕실직원이 임종까지 계속 지켜보는 가운데, 본인은 독살이라고 확신하면서 부검은 하지 말라고 하고 죽었다.

그렇게 급사하지 않았다면 영국왕실로선 이 여자를 왕비대우 하지 않기 위해서 엄청나게 고생할 판이었으니

좀 수상하긴 하지만, 당시 의술이 형편없었으니 진상이야 모른다.

이혼하지 않은 채로 죽었으니 본인들이 웬수든가 아니든가 왕비로서 왕실묘지에 묻힐 수 있는 판이었는데

친정식구들이 조용히 시체를 가져다 본국에 묻었다.

공식 마누라인 캐롤라인이 죽었다고 해서 비밀 마누라였던 피츠허버트부인과 결혼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다른 애인도 많았으니까 그럭저럭 서로 소원하게 10년 지나서 조지4세도 죽었다.

그 뒤 즉위한 동생왕이 피츠허버트 부인한테 '왕실공작부인'이라는 칭호라도 주겠다고 했지만,

(동생왕도 첩아들 줄줄이 낳고 다 늦은 나이에 결혼한 판이라 그런 건 이해를 잘 했다)

본인이 거절하고 연금만 받았다고 한다.

피츠허버트 부인은 브라이튼에 묻혔다.

어느쪽이 본마누라인지는 관점의 차이가 있을 뿐 현대기준으론 알 수가 없다. ㅎㅎㅎ

어차피 조지4세 자손은 저 애 낳다 죽은 외동딸로 끊겨버렸기에 중요한 문제는 아닐지 모르겠다.

covet님 의 글입니다.  (다음 세계포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