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야생화 - 각시붓꽃 

학명 : Iris rossii Baker var. rossii

과명 : 붓꽃과           

할머니의 보물 제 1호인 까맣게 손때 묻은 사각 반닫이에서 알록달록 수가 놓이고, 나비같기도 하고, 구슬같기도 한 것들이 여러 개 달린, 아주 낡은 족두리가 나왔습니다. 그것을 꺼내든 할머니는 발그스레 홍조를 띄우면서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한참이나 들여다보시고는 다시 그 자리에 넣고 철그덕, 자물통을 채웠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이해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 훌쩍 지나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어머니가 나보다 더 어리게 보이는 그런 나이가 되니 그 때는 몰랐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할머니의 비밀금고, 특히 그 요상하게 생긴 족두리 속에는 꿈같이 지나가버린 할머니의 세월, 아리따웠던 새댁시절, 다정한 말 한번 제대로 건네주지 않았지만 오가는 눈빛 하나로 모든 것이 통했던 먼저 가신 할아버지, 멀고 먼 친정집 돌담과 친정식구들 등등이 들어 있었겠지요.

 첫날밤, 그 족도리가 벗겨지고 원앙금침을 펴던 날의 아련한 추억도 두고두고 생각났을 겁니다.

 피끓는 두 청춘남녀가 각시가 되고 신랑이 되고,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됩니다.

 각시 붓꽃을 보면서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도 한 때는 각시였음을 새삼 상기합니다. 설레이는 가슴과, 볼터치를 하지 않아도 발그레하게 피어나는 볼을 가졌던 젊은 새댁이었음을 문득 느낍니다.

  각시붓꽃은 나지막하고, 앙증맞으며 소담스럽습니다. 붓꽃이 늘씬한 키에 진한 보라색 꽃을 달고 씩씩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비해 각시붓꽃은 작고, 예쁘고, 연약해 보입니다. 자태에는 귀티가 나지만 지역을 크게 가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무덤가처럼 나무그늘에 가리지 않는 곳에 뭉쳐나는 경향이 있지요.

 잘 가꾼 각시붓꽃을 자연석이나 토분에 담아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두면 그 꽃이 피고 지고 마를 때까지 마음 가득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꽃 한송이가 주는 기쁨을 마음 깊이 담을 수 있다면 사는 맛을 조금 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잊지 마세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