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母國 연상시키는 얼굴·사진 접하면 효과 반감

美 연구팀 실험으로 입증

 영어가 유창해도 용이나 태극처럼 중국을 연상시키는 아이콘을 본 중국인(오른쪽)은 ‘피스타치오(pistachio)’를 중국에서 부르는 대로 ‘행복한 열매(happy nut)’라고 말한다. 반면 미국 아이콘을 보면 자연스럽게 피스타치오란 영어 단어를 쓴다. /PNAS 제공

어학연수를 가도 한국 학생들끼리 어울리면 '말짱 도루묵'이라고들 한다. 심리학자들이 그 말이 사실임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미 컬럼비아대의 사회심리학자인 마이클 모리스(Morris) 교수는 지난 17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인터넷판에 "외국에서 모국(母國)을 연상시키는 얼굴이나 사진을 접하면 외국어 학습 효과가 많이 줄어든다"고 밝혔다.

연구는 논문의 제1저자인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의 수 장(Zhang)이 겪은 일에서 비롯됐다. 장은 중국 출신이나 영어가 유창했다. 그런데 발표 도중에 무심코 중국인 교수를 쳐다봤는데 갑자기 입에서 영어 대신 같은 뜻의 중국어 단어가 튀어나온 것.

장은 모리스 교수와 함께 미국에서 1년 이상 살았던 중국인 남녀 대학생들을 모아 컴퓨터 화면에 나오는 '마이클 리'라는 가상의 인물과 영어로 대화하게 했다. 절반은 중국인 얼굴의 마이클 리와, 절반은 백인 마이클 리와 대화했다. 학생들은 중국인과의 대화가 더 편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중국인 마이클 리와의 대화에서는 백인 마이클 리 때보다 1분당 사용한 영어 단어 수가 11%나 적었다.

백인과 대화하면 영어를 더 유창하게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다음 실험에서는 혼자 이야기를 지어내 말하도록 했다. 동시에 만리장성이나 자유의 여신상처럼 중국과 미국을 연상시키는 아이콘들을 보여줬다. 중국 아이콘을 본 학생들은 1분당 영어 단어 사용 수가 미국 아이콘을 본 학생보다 16%나 떨어졌다.

중국 아이콘을 본 학생의 85%는 심지어 실제 미국에서 쓰는 영어 단어 대신 중국 단어를 번역해 썼다. 중국에서 피스타치오는 반쪽이 벌어져 웃는 모습과 같다 하여 '행복한 열매(開心果)'로 부른다. 만리장성 사진을 본 학생들은 피스타치오를 중국 단어를 직역한 'happy nut'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외국인을 채용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일본인과의 취업 면접은 절대 스시 식당에서 하면 안 된다. 문화를 배려한 선의(善意)의 행동이지만 상대가 외국어 능력을 발휘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