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판 '동대문시장' 장수 비결 있었네
한국에서 물건 직접 공수…'사랑방 시장'
20년 간 무려 280만 마일 비행도
지난 수년간 렌트비도 거의 안 올라
[LA중앙일보] 발행 2016/12/19 경제 1면 기사입력 2016/12/18 19:03
45개의 점포가 빼곡히 들어선 웨스턴 백화점. 이들 업소들이 롱런할 수 있었던 것은 손님들에게 맞춤식 제품을 제공하려는 업주들의 발품과 노력 덕분이었다.
"허름해 보이지만 진짜 백화점이죠. 이불과 전자제품만 없다 뿐이지 있을 것은 다 있습니다."
동대문시장은 아시아 지역에서는 유명한 시장이다. 전국 각지는 물론, 일본, 중국, 심지어는 동남아에서도 찾는다. 특히 하루가 멀다하게 내놓는 신상품들로 패스트패션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동대문시장이 LA 한인타운에도 있다.
웨스턴길에 위치한 '웨스턴백화점'이다. 유명 브랜드 제품들도 곧장 장사가 안돼 문을 닫고 있는 요즘, 32년째 손님을 맞고 있는 이 곳엔 과일가게와 금은방을 포함해 45개의 업소가 영업 중이다.
출입구 3곳, 주차공간 36대 규모의 조그만 몰이다. 하지만 입주 업소들은 평균 15~16년째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장 30년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고 양말을 파는 가게도 있다.
이같은 웨스턴백화점의 '롱런' 비결 속에는 '280만 마일'의 마일리지가 숨어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싶다는 기자에게 '광고 안한다'고 손사레부터 치는 업주들과 마주했다.
◆제품과 고객망 관리
수지 이 상조회장이 운영하는 '해피데이' 여성복은 오후 3시라 손님이 뜸했다. 그는 "북적이는 몰은 아니지만 물건의 수급에 따라 시애틀, 덴버 등 서부지역 각지의 도매업자들이 연락을 해오고 물건을 가져간다"고 소개했다.
이 회장은 매달 한국에 물건을 보러가는 것이 20년째라고 했다. 매달 1만 2,000마일(한국 왕복 거리)을 오갔으니 20년간 무려 280만 마일(4,900여 시간)을 여행한 것이다. 그는 한국의 동대문 제품들은 매우 실용적이어서 미주 한인들의 성향과 맞고 패션도 과하거나 뒤처지지 않아 안성맞춤이라는 것이 손님들의 평이라고 설명했다. 백화점내 20~30개 업소 모두 마찬가지로 업주들이 한국에서 직접 옷을 골라온다.
단골들은 40~70대이다. 일주일에 2~3번 LA를 올 때마다 백화점을 들른다는 김이현(다우니)씨는 "사실 '푸근한' 시장 분위기가 좋다는 점도 꼭 말하고 싶다"며 "한국인 체형에 잘 맞춘 제품을 시기별로 쇼핑할 수 있는 데다 실제 내가 서울 동대문에 가서 헤매는 시간과 에너지는 차치하더라도 이런 제품들을 찾기가 무척 힘들 것"이라고 쇼핑 이유를 밝혔다.
다른 골목의 한 여성의류점 주인은 "새로 옷들이 도착하면 단골들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울리는 스타일을 잘 알기 때문에 단골들의 옷을 쉽게 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정적인 렌트비
휘황 찬란한 조명과 화려한 마네킹이 시선을 끄는 다른 쇼핑몰들에 비하면 사실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LA의 동대문시장'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백화점 중앙에 위치한 '백양·쌍방울 LA 속옥전문매장'은 올해로 3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업소 대표는 40여년 전 이민와 양말과 속옷을 팔아 가족들을 모두 부양했다. 이제는 손주들이 대학을 갈 나이가 됐지만 여전히 가게를 지키고 있다. 그는 롱런의 가장 큰 배경을 묻자 "(장사가)크게 잘 되서 그런 것은 아니고, 주인이 바뀔 때마다 렌트비가 오르는 다른 몰들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스퀘어피트당 4~5달러 수준)가 유지되고, 매출도 굴곡없이 안정적인 것이 힘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주들은 건물 소유주가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하고 배려한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업주들에게 '인기'있는 건물주가 누구인지는 다들 입을 닫았다.
◆한국식 '에누리 마케팅'
40~70대 한인들에게는 에누리를 즐기는(?) 문화가 남아있다. 가격표가 안 붙은 옷들도 적지 않으니 20~30%는 입씨름으로 깎을 수 있다고 믿고 덤빈다.
백화점내 남성복 매장 업주는 "깎아달라는 요구를 단골들이 으레 하기 때문에 에누리 없는 장사를 하기 힘들다(웃음)"며 "에누리 마케팅은 단골을 만들고 믿음을 만든다"고 노하우를 설명했다.
정해진 것은 없지만 할인 폭의 깊이와 단골의 수는 비례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에누리로만 물건을 팔지는 않는다. 이 회장은 "한국 제품을 파는 다른 몰과 인근 한인 대형몰들의 가격과 트렌드도 분명 지켜봐야 한다. 여기 오는 손님들이 갈 곳이 없어서 오는 손님들은 아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웨스턴백화점은 세일을 자주 하지 않는다. 2월과 9월 정기세일이 있으며 마더스데이에 할인판매를 하는 것이 전부다.
글·사진=최인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