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위안부 합의’ 반대 노숙 1년, 배화여대 최혜련씨
ㆍ30명 ‘지킴이’ 이젠 5명뿐이지만, 합의 폐기될 때까지 남을 것
ㆍ1년 더 휴학 고민…함께하는 삶이 행복·응원해 준 시민께 감사

‘평화의 소녀상’ 지킴이 최혜련씨가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폐기할 때까지 ‘평화의 소녀상’을 지킬 거예요.”

배화여자대학교 영어통번역과에 재학 중인 최혜련씨(21)는 지난해 12월28일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발표 이틀 후인 30일부터 서울 중학동 옛 주한 일본대사관 건너편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그는 휴학까지 하면서 1년 동안 소녀상 곁을 지켰다. 한·일 위안부 합의 1주년을 앞둔 지난 27일 소녀상 인근에서 최씨를 만났다. 그는 “위안부 합의는 나라를 팔고 역사를 지우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양심이 있다면 소녀상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합의가 기습적으로 발표된 지난겨울 시민들이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소녀상 옆에 농성장을 차렸다. 이들은 ‘소녀상 지킴이’로 불렸고, 최씨도 그중 한명이다. 최씨는 “그때는 비닐 천막도 없이 그냥 은박 돗자리만 있었다. 정말 추웠는데도 30명 정도 모였다”고 말했다. 지금 농성장에 남은 ‘소녀상 지킴이’는 5명이다. 최씨는 “농성이 길어지면서 그만두는 사람들이 생겼다. 겨울 농성은 더 힘들다. 지금은 학교가 방학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이 많아 5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씨는 소녀상을 떠날 수 없었다. 그는 “우리 스스로 ‘소녀상을 지키겠다’고 한 약속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분들이 우리를 ‘뭘 잘 모르는 어린 친구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가 하는 말은 가볍지 않았다”고 말했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농성장을 여성들만 지키고 있을 때 한 남성이 다가와 “내가 너를 칼로 찔러도 아무도 모른다”며 협박한 적도 있다고 한다. 최씨는 “길에서 사는데 왜 험한 일이 없겠냐. 그러나 무섭진 않았다. 모두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라고 말했다.

가족과의 갈등도 있었다. 부모님이 어느 날 “너 길에서 자니”라며 걱정했다. 최씨는 “저를 믿어주세요”라며 가족을 안심시켰다. 최씨는 “부모님은 늘 ‘약한 사람을 돕고 강한 사람과 싸우라’고 말씀하셨다. 지난 설날 부모님께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1년 동안 휴학하겠다고 했다. 부모님이 처음엔 심하게 반대하셨지만 지금은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날 열린 정기 수요시위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죄 배상과 매국적 한·일 합의 폐기를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의 대표가 됐다.

최씨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하다”며 “1년 더 휴학하는 것을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소녀상이 곧 ‘나’라고 생각한다. 제가 그때 태어났다면 같은 일을 겪었을 테니까”라며 “그렇게 아픈 일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문제 삼지도 못하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따뜻한 손길은 최씨에게 힘이 된다. 최씨는 “천막 안에 있는 난로, 전기장판, 담요, 핫팩, 먹거리는 모두 시민들이 준 선물”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소녀상을 찾아온다. 최씨는 “촛불 시민들 덕분에 기부금과 위안부 합의 폐기를 요구하는 서명 인원도 2배로 늘어 신이 난다”며 “소녀상이 정부의 철거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농성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