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말이 짧게 끝나서 죄송.. ^^;
제 홈피에 올렸던 글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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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기덕
[주연] 오영수, 김종호, 서재경, 김영민, 하여진, 김기덕
[제작년도] 2003
[공식홈페이지] www.springagain.co.kr

김기덕 감독의 작품세상을 처음 만난건..
98년도 영화 [파란대문]에서였다.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몸을 팔아 먹고사는 여자와
같은 또래지만
순결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주인집 여대생 간의
서로 대비되는 환경 속에서 그려지는 심리적 갈등과 대립..
그것이 서서히 풀어지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게 되고..
결국 우정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과정을
심도있게 그려낸 영화였는데..
참 인상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다음으로 만난건 [나쁜 남자]
"사랑"이 반드시 아름다운 모습일 수 만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준 영화.

그는 이 외에도..
많은 문제작(?)들을 남겼다.
[악어] [야생동물보호구역] [섬] [수취인불명] [해안선]
그리고 최근 원조교제를 소재로 한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된 것들 중 하나는..
그의 영화들은 대부분 많은 사람들의 논란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는 사회에서 가장 민감하게 여겨지고 있는 이슈들이나
소외되고 외면당하고 있는 주변인들을 소재 삼아
그것들을 때론 여성의 손길처럼 섬세하게
때론 남성의 느낌으로 거칠게 표현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영화들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뚜렷이 양분되는 경향을 보인다.
"예술"이다 혹은 "외설, 엽기"이다로..

그에 대한 확연한 증거라도 되듯..
그의 영화들에 대한 별점은
모두 5점 만점에 3이나 3.5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 그가 아홉번째 작품으로 만든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는..
다소 부드럽고 온화한 형식을 선보였다.
마치 쉬지 않고 뭔가를 휘갈겨 쓰다가..
잠시 숨을 고르며 쉼표를 한 번 찍은 듯이 말이다.

인생을 사계절에 빗대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다시 봄이라는
5개의 에피소드로 영화는 구성되어 있다.

솔직히..
구성에 있어 그리 감동적인 발상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미 시나 수필이나..
그 외 여러가지 문학 속에서..
그와 비슷한 형식으로
인생과 계절의 흐름을 견주어 말하곤 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영화는 그리 지나치게 철학적인 허세를 담지도..
그렇다고 가볍게 보아 넘길 무의미한 영화도 아니었다.

적절한 전개 속도와..
깔끔한 구성..
그리고 빼어난 영상미..

다분히 선적이고 정적인 영화이긴하나,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호수 한가운데에 신비롭게 자리잡고 있던 암자의 모습과..
벽은 없이 문지방과 문만 있던 방 안의 모습이었다.

보이지 않는 벽..
하지만 분명히 벽은 존재했기에
드나들땐 문을 통해 드나들어야 했다.
그것은 마음에 관한 문제였던 것이다.
벽이 있다고 여기는 마음과 벽 같은건 없다고 여기는 마음..

소년이 소녀에게로 가기 위해..
곁에 잠든 노승의 몸을 넘어 문을 열고자 했으나..
문이 노승의 몸에 걸리는 통에..
보이지 않는 벽을 가로질러 소녀의 잠자리로 간 것에서부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업보의 길로 들어선 것이었다.

마치 어느 따뜻한 봄날..
어린 아이가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의 몸에 돌을 매달아..
처음 살생을 저질렀을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또한가지 인상깊었던 장면은..
밤새도록 암자의 나무바닥에 반야심경을 칼로 새겨넣던..
젊은 남자의 처절한 모습이었다.

바람난 아내를 죽이고, 그에 대한 고통과 원망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반야심경을 거칠게 파나가던 그가
글자 하나하나를 파내는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되고..

그렇게 나무바닥이 아닌
자신의 상처투성인 마음에
반야심경의 마지막 글자를 다 새겨넣은 후,
쓰러져 잠든 모습은..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후회와 고통의 감정과 싸우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는가 싶어
가슴이 아릴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관객들을 동원했던
여타 쟁쟁한 영화들(올드보이니, 살인의 추억이니 같은)을 제치고..
마치 복병이라도 되는양 나타나서는
작년 청룡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기술상"을 거머쥐었다는
예상을 뒤엎은 얘기는..

다소 충격적이면서도..
좋은 영화는 관객수나 별점에 의해 결정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영화에는 뚜렷한 색채와 감성이 있다.
조금만 사색의 눈으로 들여다 보면
그가 관객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싶어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쓸데없이, 소모적으로 관객을 농락하지 않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중 겨울..
장년의 모습으로 김기덕 감독이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좀처럼 모자를 벗지 않는다던 그가..
머리를 짧게 민 모습으로 무예를 선보인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듯..
어느 봄날 한 동자승이 그랬듯..
새로운 봄에도 또다른 동자승은..
그렇게 살생의 업을 저지르고 만다.

삶은 그렇게..
계속해서 순환의 모습을 이어가는가 싶다.


* 이전홈의 김민경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