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안 작은 카페 이야기....이광주/역사학. 인제대 명예교수
아를의 골목에 위치한 카페 반 고흐는 고흐의 걸작 〈밤의 카페테라스〉의 무대가 되었던 무명카페였다. 지금은 관광명소가 된 카페 반 고흐처럼 소도시의 골목을 중심으로 서민들의 일상 공간이 된 유럽의 카페 이야기, 그리고 비엔나 커피와 크루아상의 재미있는 유래를 들어보자.
로마나 파리, 빈의 거리를 거닐면 몇 집 건너서 카페에 부딪친다. 그리고 유럽의 크고 작은 도시나 마을의 광장, 뒷골목에서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카페의 테라스다. 카페가 놓인 거리는 그것만으로도 멋스럽고 정겨운 풍경을 이룬다. 카페맨이었던 독일의 현대작가 헤르만 케스텐의 말이 떠오른다. “로마에서는 적어도 9개월은 이어지는 아름다운 계절에 카페는 마법에라도 걸린 듯 그 수를 더해 간다.” “거의 테이블도 없고, 더욱이 의자라고는 전혀 놓여 있지 않는 작은 바(술집) 앞에 마치 봄이 날아 오듯 갑자기 몇 개의 테이블이 나타난다. 그리고 로마의 길거리는 어디서나 이어지는 하나의 카페처럼 보인다.”
유럽에서는 도시의 아침은 카페 테라스의 테이블에 새하얀 크로스가 씌워질 때 시작되는 듯 싶다. 카페에 관해 토로한 케스텐의 말을 몇 자 더 적어 보자. “나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나날을 카페하우스의 한구석에서 보냈으나 그것을 후회한 적은 한번도 없다.” “단골 카페하우스의 테이블에서 글을 쓰는 버릇이 몸에 밴지도 어언 반세기가 된다.”
그의 단골 카페는 베를린의 명문 문예카페 ‘로마니셰스 카페’였다. 유럽에는 카페문화 혹은 도시문화를 장식하는 유서 깊은 카페가 많다. 그런데 그것들은 대개 문예카페다. 베네치아의 플로리안, 파리의 프로코프, 로마의 그레코, 빈의 첸트랄, 베를린의 로마니셰스는 그 명문 중의 명문이다.
카페의 도시 빈에는 오늘날 약 1400∼1500채의 카페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로마나 파리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빈의 경우 그 명칭이 금방 떠오르는 유명한 카페만도 10여 채나 된다. 유명한 카페는 대개 명성이 높은 문인, 예술가, 저널리스트 그리고 그들을 숭배하는 작가 지망생, 풋내기 화가를 단골로 맞아, 그들의 보헤미안적, 코스모폴리탄적인 기질을 반영하여 자유롭고 멋스러운 분위기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카페의 대부분은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카페의 문화사와는 관련이 없는, 도시나 마을 광장, 혹은 골목길에 자리하여 그 근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사랑방과 같은 구실을 한다. 오늘은 그러한 카페를 찾아가 보자.
고흐의 그림에 〈밤의 카페 테라스〉가 있다. 그것은 어두운 북방 홀란드 태생의 고흐가 오랜 불안과 상실감에 시달려 ‘더 밝은 하늘 아래 자연을 본다면’ 하는 강렬한 기대를 안고 태양이 빛나는 남쪽 프로방스지방 아를로 거처를 옮긴 뒤의 작품이다. 그가 남쪽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파리에서 친하게 지낸 로트렉은 고흐의 귀에 속삭였다. “남부 프랑스에 간다면 아를에 가게, 그 거리에는 미인이 많다네.”
고대 로마와 중세의 유적으로 박물관 도시를 이룬 아를하면 떠오르는 것은 〈카르멘〉의 작곡가 비제의 〈아를의 여인〉(1872)이지만, 고흐는 아를의 빛과 색채에 매료되어 그곳에 체류하는 15개월 동안 300점을 넘는 작품을 완성하였다. 〈밤의 카페 테라스〉는 고흐의 화풍을 상징하는 최고의 걸작 〈해바라기〉 3점 연작이 그려진 같은 해 같은 달(1888년 8월)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해에는 〈씨앗을 뿌리는 사람〉도 그려졌다. 지중해 정오의 태양에 촉발되어, 몸과 마음 깊은 곳에서 이글이글 불탔던 천재화가 고흐의 창조적 데몬이 단번에 돌출된 것일까. 친구와 카페를 좋아한 고흐는 파리에 거주할 때 로트렉, 고갱과 어울려 카페 누벨의 단골이었다. 누벨에는 드가도 출입하고 고야나 들라크루아에 관해 논쟁하는 미술학교 학생들로 언제나 떠들썩했다. 화가들의 화제의 중심은 돈과 여인이었다. 아직도 로트렉만이 화상들의 관심의 대상이어서 그들은 대개 가난하였다. 고흐는 독한 압생트를 즐겨 마시며 함께 춤을 춘 몽마르트르의 바람난 여인들을 생각하였다.
〈밤의 카페 테라스〉의 무대는 당시 인구 2만 3000의 소도시에 있던 무명 카페였다. 광장 가까이, 밤의 장막이 거리를 정적으로 덮은 골목의 카페 맞은편 상점 건물들의 2, 3층 거실에서는 간간 등불 빛이 새어 나오고, 별이 빛나는 코발트 블루의 밤하늘은 보도를 짙게 비치고, 그에 어울리듯 카페의 테라스는 큰 가스등이 환히 비쳐 금색으로 빛난다. 고흐는 그러한 정경에 끌려 카페에 자주 드나들며 밤에 실제로 카페 앞에 삼각받침대를 세워 〈밤의 카페 테라스〉를 그렸다. 그리고 카페의 여주인 지누 부인과도 잘 사귀어 〈아를의 여인(지누 부인)〉(1881년 11월)을 그리기도 하였다. 몇 해 전 여름, 파리를 떠나 몽펠리에로 향하는 도정에 잠시 들른 아를의 그 카페는 지금은 ‘카페 반 고흐’라고 이름을 고쳐 고흐를 좋아하는 관광객으로 몹시 북적거렸다. 아를 주변에 끝없이 이어지는 해바라기의 물결, 태양의 상징이라고 하는 해바라기, 그것은 참으로 고흐에게는 생명의 원화(源花)이기도 하였다.
그간 필자는 본지에 여러 회에 걸쳐 유럽 여러 도시의 명문 카페에 관해 기술하였다. 그러나 그 글들을 쓰면서도 여로(旅路)의 산책길에서 무심히 들른 크고 작은 도시의 골목 안의, 혹은 마을 작은 광장의 카페들의 정겨웠던 풍경을 자주 떠올리곤 하였다.
이탈리아 시에나의 캄포광장에 바로 면한, 중세의 거리 그대로 고풍스럽고 고적한 골목길, 관광객으로 넘실거리는 소연한 광장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일상적 표정의 동네 사람들로 별세계를 이룬 카페의 담담한 저녁 풍경. 지금도 밀레의 전원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파리 근교 바르비종 마을, 대낮에도 인적이 뜸한 메인 스트리트 그랑 뤼 거리, 그 거리에서 생애를 보낸 앙리 루소와 밀레의 옛집을 한가운데 두고 조그마한 미술관과 화랑, 화방들 사이사이에 의좋게 자리잡은 레스토랑과 카페들, 거기 어느 카페에 앉아 마치 〈만종〉이후 시간이 정지된 듯한 거리를 한참 쳐다본 일들. 층층이 서로 겹친 듯한 백아(白亞)의 집들 사이사이 미로(迷路)를 따라 오른 언덕 중턱, 푸른 하늘을 떠받든 몇 그루 거목 아래 멋스러운 풍경을 이룬 작은 광장의 카페. 그리고 관광객으로 몹시도 흥청거렸던 소렌토의 밤 카페가 연출한 갖가지 흥겨웠던 일들. 바닷가, 산기슭이라기보다 낭떠러지에 기대듯 층층으로 세워진 분홍색 지붕, 백아의 3, 4층 건물로 마을을 이룬 아말피의 검푸른 지중해를 바로 마주본 바닷가 작은 카페의 테라스, 그 카페 바로 곁의 자그마한 서점은 신서판의 그리스-로마 시대 이래의 갖가지 고전들이 고본의 화집들과 아울러 나를 감동케 하고, 가게 앞 프랑스의 《르 몽드》, 《리베라시옹》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및 일본의 《아사히신문》 등이 나를 또 놀라게 하였다.
빈에는 비엔나 커피가 없다
그 밖에도 여기저기 우연히 들른 많은 카페들. 그 카페들은 작가나 예술가들의 이른바 문예카페, 신사 숙녀의 살롱과 같은 유명 카페와는 다르다. 동네 사람들이 아침 저녁으로 수시로 들르는 그들의 사랑방이다. 그 보통 사람들은 거기서 식사도 하고 이웃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때로는 무위(無爲)의 시간을 홀로 즐기기도 한다. 손님과 가르송(점원), 주인은 모두 허물없는 이웃이며 친구다. 그리고 어쩌다 들른 이방인에 대해서도 따뜻한 시선을 잊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유럽에 있어 카페가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의 공간이 된 지도 참으로 오래다. 바흐의 소곡에 〈커피 칸타타〉가 있다. 커피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에 대해 딸이 달래며 노래하는 아리아다.
그 곡이 작곡된 1732년 무렵 ‘아라비아의 포도주’는 아직도 외래의 값비싼 진품으로 가정에서는 상류층만이 즐겼다. 그러나 거리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카페에서는 모두가 즐기는 기호품이 되어 갔다.
커피가 원래 지식인의 기호품이었듯이 카페 또한 초기에는 그들의 담론을 생산하는 사교장이었다. 그러다가 단돈 1페니만 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는 유혹에 일반 서민들도 흠칫흠칫 카페에 찾아 들었다. 그리고 19세기 중엽에 이르면 많은 카페가 서민으로 붐비게 되었다. 그들도 선술집(펍)의 독한 술보다 향기 그윽한 커피에 맛들인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빈에는 우리가 잘 아는 ‘비엔나 커피’는 없다. 그곳 관광버스의 안내양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빈에 오셨으니 한번 본고장의 비엔나 커피를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시지요？ 그러나 카페에 들러 ‘비엔나 커피’라고 말하여도 통하지 않습니다. ‘아이슈판너’라고 주문하십시오.”
‘아이슈판너’는 ‘한 마리 말이 끄는 마차’라는 뜻이다. 17세기 터키로부터 유럽에 커피가 전래되었을 때 유럽 사람들은 그 멋스러운 향기에 모두 도취되었다. 처음에는 상류 시민계급의 기호품이던 커피가 커피 상인들에 의해 대량으로 수입되면서 거리에 카페가 생겨나 모두 커피를 즐기게 되었다. 마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차에서 내릴 수 없고 카페 앞에 마차를 잠시 세우더라도 한 손은 밧줄을 꼭 잡고 있어야 했다.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들에게 가르송는 손잡이가 달린 글라스에 커피와 설탕 그리고 생크림을 듬뿍 넣어서 주었다. 크게 좋아한 마부는 “이것이야말로 빈의 커피다”라고 외쳤다. 그때 로부터 그것은 ‘아이슈판너’라고 불리게 되었다. 모두 즐겨 마시는 그 향기로운 ‘비엔나 커피’가 마부로부터 유래되었다 함은 참으로 유쾌하다.
마부의 후예인 오늘날 유럽의 택시운전 기사들도 포도주와 함께 커피를 좋아하는 듯하다. 프랑스에서는 운전기사들이 운전대 옆에, 잠시 쉬는 동안 한잔 들이키는 것인지, 포도주 병을 놓고 있는 장면을 가끔 보지만, 작은 도시에서는 카페 앞에 빈 차를 세워 놓고 선채 커피를 마시고 떠나 버리는 기사들을 한두 번 본 일이 있다. 한번은 오를레앙에서 카페에 앉아 있다가 카페 앞에 차를 세우고 커피를 마시는 기사에게 장 다크의 집으로 가자고 청하자 “네, 갑시다. 그런데 마드모아젤 장 다크는 지금 집에 없을 텐데요” 하여 웃은 일이 있다. 그렇듯 품위 있는 농담은 카페를 즐기는 그들의 여유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비엔나 커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초승달 모양의 크루아상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보자. 영국의 애프터눈 티는 스콘이 붙어 다니기 마련이지만, 이른바 유러피안 스타일의 아침식사 테이블에는 커피와 막 구워낸(!) 크루아상이 사람을 기쁘게 한다. 그런데 크루아상에도 재미있는 역사적 에피소드가 붙어 다닌다. 때는 1686년 헝가리를 포위하고 있던 터키군이 지하도를 파고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잠입할 기세였다. 한밤중 땅 밑에서 곡괭이질하는 소리를 들은 이들은 빵을 굽던 빵집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수상쩍은 소리를 당국에 알렸고 그 덕택으로 부다페스트는 터키의 침략군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다. 시 당국은 그 빵집들에게 특별히 새로운 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당시에는 규정 이외의 빵을 구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크루아상이다. 오스만-터키의 상징인 초승달을 구워서 만든 그 크루아상을 카페의 원조로서 커피와 차를 몹시도 즐기는 터키 사람들도 먹는지는 모르겠다.
카페의 대중화 현상이 나타나자 지식인이나 전문직, 신사계층은 카페를 선별하여 저마다의 단골 카페를 꾸렸다. 그러자 서민들도 그들대로 단골 카페를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그것은 대개 자기 집 가까운 골목길 카페나 작은 광장 카페였다.
미술관에서 미술사에 관한 하찮은 지식이 미술작품의 순수하고 즐거운 감상을, 또 화가와의 대화를 방해하듯 유명한 카페에 찾아가면 나는 커피나 카페를 즐기기보다는 그만 명소 사적을 찾아온 관찰자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골목 안 카페에서 나는 그저 커피를 즐기고 카페의 따뜻한 분위기에 어울리면 그만이다. 무시로 카페에 들러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불어 연년세세(年年歲歲), 오늘도 좋은 날이다 하며 한가로이 무위의 시간을 보내는 골목 안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어쩌면 제일 멋진 카페맨일지도 모른다.
